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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효리 조회 2회 작성일 2021-05-03 15:29: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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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건강 톡톡] 피부 뚫리는 ‘욕창’, 해마다 증가…‘자세 변경’이 관건 / KBS뉴스(News)

인구 고령화에 만성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이 늘면서 욕창 환자도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계속 누워 있게 되면 피부가 짓눌려 궤양이 생기는 건데요.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쉽지 않고 세균감염으로 패혈증까지 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박광식 의학전문기자와 함께 욕창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실제로 욕창 환자가 늘고 있나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먼저 욕창에 관해 설명하면요.
다른 말로 압력궤양이라고 불립니다.
신체 특정 부위에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졌을 때 피부가 혈액순환이 되지 않으면서 피부가 썩는 병입니다.
예를 들어 하반신 마비가 있는 환자의 경우 누운 상태에서 침대와 맞닿는 부위가 있겠죠.
혼자선 움직이지 못하니까, 2시간 이상 그대로 두면 중력에 의해서 눌리게 되고 모세혈관에 피가 통하지 않으니까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그 주변이 썩는 겁니다.
연도별로 욕창 환자를 보면, 2014년 만9천여 명에서 지난해 2만 5천여 명으로 33% 증가했습니다.
나이별로 보면, 70대부터 급격히 증가해 80대 이상이 47% 절반 가까이 차지합니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만성질환자, 마비 환자도 덩달아 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욕창은 뼈가 돌출되어있는 엉덩이 부위라든지 양쪽 대퇴부위 그리고 뒤통수 이런 부분에서 잘 발생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요.
왜냐하면, 단순히 피부 자체만 벗겨진 게 아니라 깊숙이 근육과 뼈까지 썩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구멍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상처가 깊다 보니 계속 세균 감염이 빈번히 발생하고, 이 때문에 혈액 속에 세균이 돌아다니는 패혈증까지 발전해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입니다.

노인에서 증가한다고 하셨는데, 특히 취약한 분들이 있을까요?
[기자]
먼저 자기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마비 환자가 취약하겠죠.
중풍 같은 게 없더라도 전반적으로 매우 쇠약한 노인에게 잘 생길 수 있습니다.
보호자가 옆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를 말하는데요.
이런 경우 근육도 굳어져 있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했듯이 2시간 이상만 같은 자세로 누워있다면 욕창이 발생합니다.
한번 발생한 욕창은 소독치료나 자연치료가 거의 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병인데요.
병원에서 압력을 분산시키는 에어매트리스를 이용하거나 여러 가지 체위변경을 해줍니다.
핵심은 옆에 사람이 붙어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줘야 하는데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계속 사람 손이 가야만 예방이 가능한 병이군요.
그렇다면 주변 여건에 따라 상황이 천차만별이겠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관리'가 핵심인 병입니다.
제가 욕창을 앓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를 직접 만나봤는데요.
이 60대 남성은 지난해 뇌진탕과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수술 후 약 네 달 동안 요양병원에 있다가 엉덩이 쪽에 욕창이 발생했는데요.
결국, 피부이식수술까지 받았습니다.
보호자의 말 들어보시죠.
[허길순/욕창 환자 보호자 : "욕창이났는 데 욕창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욕창을 수술하고 갔어야 되는데 요양병원에 가서 있다 보니까 관리가 안 되는 거에요."]
이런 상황은 관리가 여의치 않은 저소득층에서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요.
실제로 서울시보라매병원 연구팀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전국에 욕창 입원환자를 분석한 결과,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대비 의료급여 수급자에서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자의 말 들어보시죠.
[박지웅/서울시보라매병원 성형외과 교수 : "저소득층 같은 경우에는 일단 의료시설의 접근 자체도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환자관리에 대한 의지도 매우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없다면 앞으로도 의료급여환자 등 의료취약계층환자에 있어서는 욕창 발생률이 계속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연세의대와 삼육대 공동연구팀이 치매 진단을 받은 장기요양

#5분건강톡톡 #욕창 #세균

[생활현장] 비염·아토피 원인 ‘집먼지진드기’…올바른 청소법은?

앵커 멘트

생활현장 순서입니다.

이런저런 알레르기 질환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 알레르기의 주범 중 하나가 바로 '집먼지진드기'란 해충입니다.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만큼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고, 잘 없애기도 어려운데요.

집먼지진드기 제거법, 유지향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세 살배기 아기를 키우는 김민영 씨는 거의 매일 청소를 합니다.

진공청소기로 카펫 먼지를 빨아들이고, 침대 매트리스의 먼지도 제거하지만 개운하지만은 않습니다.

인터뷰 김민영(주부) : "아이가 있으니까 청소를 매일 하긴 하는데 집먼지진드기 같은 해충까지 완전히 제거가 되는지는 사실 굉장히 불안하죠."

전문장비로 먼지를 채취해 집먼지진드기 농도를 측정해봤습니다.

청소를 잘했다지만 매트리스와 카펫에선 먼지 1g당 집먼지진드기가 위험수준인 백 마리 이상 확인됐습니다.

한 달 전 세탁한 이불에서도 먼지 1g당 50마리 정도가 검출됐습니다.

채집한 먼지를 40배 정도 확대해보니 살아있는 집먼지진드기가 보입니다.

밤사이 1g 정도의 피부각질이 떨어지고 땀이 나기 때문에 번식이 쉬운 겁니다.

인터뷰 김남진(곤충학 박사) : "사람의 피부에서 나오는 각질 이런 것들이 주 먹이원이 되다보니까 사람이 접촉하는 침구류에 많이 서식할 수 있고..."

문제는 집먼지진드기가 많을 경우 비염이나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더욱 민감합니다.

인터뷰 송대진(고대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집먼지진드기의 배설물에 있는 단백질이나 효소 같은 물질들이 민감한 분들한테는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죠."

집먼지진드기를 없애려면 침구류는 되도록 2주일에 한 번씩 60도 이상의 온도에서 삶아 빤 뒤 탈탈 털어 햇볕에 말리는 게 좋습니다.

매트리스는 6개월에 한 번씩 뒤집어주고 침대 속에 진드기 퇴치용 시트를 깔거나 제거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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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문학관에 들어섰다. 농기구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다들 투박하면서도 고집스러운 그 시대의 사내를 닮았다. 지게 앞에 작대기 하나가 길게 누웠는데, 밑 부분에 뾰족하게 박힌 쇠가 보인다. 지게와 작대기를 보니 평생 짐을 진 아버지의 삶에 가 닿는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는 군번도 없이 전장에 배치되었다. 낯선 골짜기에서 전우들이 하나둘 쓰려져도 아버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셨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뒤라서 남은 것이라고는 기근과 상처뿐이었다. 많은 식솔이 먹고살려면 산골짜기 비탈이라도 개간해야 했다. 물길을 따라 일구다 보니 천 평이 될까 말까 한 논이 자그마치 쉰하고도 다섯 다랑이나 되었다.

말이 좋아 논이지 기름진 밭보다 못했다. 계곡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었기에 논바닥이라야 함지박만 했다. 가족에게 목숨 줄과 같기에 아버지는 문전옥답으로 여기며 농사를 지었다. 살얼음이 녹기도 전에 못자리를 하고 나서부터 논으로 가는 날이 잦아졌다. 안방보다는 산골짜기가 편한지, 아버지가 논에 가지 않는 날은 밥에 뉘같이 드물었다.

아버지의 지게는 유난스레 높았다. 짐을 많이 싣기 위해, 지겟가지 중간을 가로지르는 까막서리 양쪽으로 다른 막대를 덧대 묶어 높이를 더했다. 그러고는 누렇게 익은 나락을 지게 위에 쌓아올렸다. 우기가 감도는 날이면 베어놓은 나락이 비에 젖을세라 꼭두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집과 논을 오갔다. 멀리서 보면,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나락볏가리가 공중에 뜬 채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골짜기에 있는 외딴집이다 보니, 밤마다 빨갱이들이 와서 괴롭혔다. 자칫 자식에게 해를 입힐까봐 아버지는 집을 버리고 큰 마을로 이사하였다. 그리하여 애써 개간한 논과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산모퉁이 몇 개를 돌고 개울을 두 개나 건너야 논에 닿을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오르막이라서 숨이 턱에 닿아 입에서 단내가 났고, 오는 길은 내리막이라서 산짐승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후르르 뛰어 내려왔다. 빈 몸으로 다니기에도 힘든 길이었다. 그런 길에서 나락을 지고 후들후들 다리를 떨던 아버지가 잠시 쉴 때는 지게가 넘어지지 않도록 작대기로 받쳐 놓았다.

아버지는 분답잖게 봄비가 오는 날이면 창고 앞에서 지게 만들기에 열중했다. 끌과 자귀로 뚝딱뚝딱 나무를 다듬는 소리가 늦잠 자는 내게 자장가처럼 들렸다. 지겟가지 두 개를 바로 세워 놓고 중앙에 세장을 붙여 몸체를 맞댔다. 정으로 지게 목발에 구멍을 뚫은 다음, 짚을 물에 축여 꼽꼽해지면 나무망치로 토닥토닥 두드려 등석을 엮어 붙였다. 어깨에 메는 미끈은 긴 머리를 땋듯 정성스레 땋아 지게에 달았다.

지게를 손보고 나면 아버지는 지겟작대기를 만들었다. 위쪽이 가위처럼 벌어진 나무를 골라 아버지의 키에 맞게 잘랐다. 겉을 매끈하게 다듬은 다음 송곳처럼 뾰족한 쇠를 끝 부분에 박았다. 아버지는 빈 지게를 진 채 작대기로 땅을 몇 번 짚어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작대기 끝에는 쇠가 들어가도록 둥글게 말아놓은 놀구멍이 없다. 슴베가 잘 들어가게 하는 괴구멍도 파지 않는다. 작대기 끝에 쇠를 박으면 그것이 물미장이다. 호미나 낫에는 힘을 받도록 테두리를 감싸주는 신쇠가 있지만 물미장에는 아무런 치장도 없다. 오직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묵묵하게 삶을 지탱하는 내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농사일밖에 몰랐다. 땀에 젖은 베적삼에 논 갈고 밭을 갈았다. 동이 트면 아침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오듯, 자고새고 하는 일이 지겹지도 않은지 우직하게 일만 하였다. 밤이면 끙끙 앓아도 날이 밝으면 들로 나가는 일벌레가 따로 없었다. 오직 땅만 아는 샌님처럼 땅 한 뙈기 늘이는 일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았다. 그런 아버지는 일을 놓으면 밥숟가락을 놓는 것과 같다고 여기셨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날 때 작대기는 요긴했다. 촉이 땅에 쏙 들어가라고 아버지는 작대기에 힘주어 꽂았다. 그런 다음 한 손으로 작대기를 짚고 한 손으로는 지게 목발을 잡고 무릎을 천천히 세웠다. 비탈진 길에서는 작대기로 지탱하며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아파도 묵묵히 버틴 아버지에게 지게와 작대기는 한 몸이었다.

아버지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길도 아닌 비탈 섶을 넘나들었다. 촉이 박힌 작대기로 땅을 짚으며 산속의 적요를 발걸음으로 사각사각 깨워가던 길. 아버지의 발바닥에 굳은살을 덧대게 한 그 길엔 이제 울울창창 숲이 우거져 있으리라. 산골짜기 하나를 길게 차지했던 논은 주인의 부재를 알까. 여름이면 어김없이 하얀 벼꽃을 피우는지 궁금하다.

가끔 작대기가 사립 안에 있으면, 우리 형제들은 그것으로 마당에 금을 그었다. 반대차기나 땅따먹기를 할 때 몸을 구부리지 않고 금을 그을 수 있었다. 물미장으로 그은 금은 밟아도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뒷밭에 독사라도 나오면, 화들짝 놀란 어머니는 김을 매다가도 촉이 박힌 작대기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창처럼 뾰족한 물미장에게 죽임을 당한 독사는 개울가에 있는 가시나무에 연 꼬리처럼 걸리기도 했다.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리고, 죽음을 배우는 데도 그만큼 걸린다고 한다. 사람은 늙어야 사방이 보인다는 성인의 말이 있듯,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나서야 아버지를 여러 면에서 볼 수 있었다. 노부모의 장남이었으며,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여러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었다. 마을에서는 척박한 땅을 억척같이 일궈 옥토로 바꾼 농사꾼이었다. 아버지가 벼슬이 높아 권세를 내세우며 거드름을 피웠다면, 오늘 이처럼 애틋하게 기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평범한 남자였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소낙비 지나가듯 가버리는 것이고 보면, 아무리 바동거려도 살림에 주름이 펴지지 않으면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었을 것이며, 친구들이 요사스런 자리에서 장단에 맞춰 가무를 즐길 때면 왜 휩싸이고 싶지 않았으랴. 약주를 좋아하는 옆집 아저씨처럼 취생몽사로 적당히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삼불주의 三不主義를 지켰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어떠한 일도 뿌리쳤을 것이다.

철부지 때는 지게를 지고 다니는 아버지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내 삶에 있어 이러한 기억의 화첩은 비밀의 유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힘든 일에 부닥쳐도 옛 그림을 떠올리며 거뜬히 견뎌낼 수 있었다.

물미장을 가만히 바라본다. 연필심 같은 촉으로 기억을 다시 쓴다. 아득한 풍경이 연막처럼 퍼지다가 복통처럼 가슴을 내리누른다. 아버지의 삶이 납덩이같이 머릿속에 남아 무거운 공기를 타고 서서히 퍼진다. 평평한 일상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벼랑에서 피운 삶. 비탈길을 오르고 아찔한 낭떠러지 옆을 조심스레 걸어온 아버지의 삶이 전시관 유리 안에 박제 되어 있다.

오늘 아버지의 삶을 다시 읽는다. 그 시절의 화첩을 몇 장 넘기다가 덮는데, 마음의 골짜기에서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꾸다 만 꿈처럼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201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물미장
작가 : 류현승

#명상음악#피아노#뉴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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